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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순례후기

제목 솔뫼, 신리, 합덕 도보순례 / 2021.10.17
작성자 김창환 작성일 2021-10-27 14:23:50


+찬미예수님
10/17일 솔뫼, 신리, 합덕 3곳을 덕수궁앞에서 09시에 출발하여 달려 갔습니다.
오늘 순례지는 충청도 내포입니다. 124위 복자 중 49분이 충청도땅에서 배출 되었습니다.
어떻게 이렇게 많은 순교자들과 성지, 사적지가 있는지 궁금하였습니다.
옛부터 충청도내포는  선비가 많이 살았습니다, 특히 성호 이익선생의 처가가 예산에 있어 이익의 후예들이 왕래를 많이 하였고 정착을 하였다고 합니다.

서해안에서 배를 타고 이익이 거주하던 안산까지 와서 왕래를 많이 하였습니다.
그래서 특히 선비들 중에도 의식이 깨어있는 선비들이 많이 살았습니다. 예산 추사 김정희선생 고택 , 홍유한 선생의 고향도 내포에 있습니다.
그리고 한국 천주교회 초기 내포의 사도 이존창이 전교도 잘 하였고 , 중국에서 프랑스선교사들이 서해안으로 입국하고 숨어서 전교하기 좋은 곳 이었습니다. 조선시대 한양을 기준으로 교통이 불편한 곳 이라 중앙 관리들의 왕래가 힘든 곳 입니다.

바닷가 지방이라 여러 신앙을 잘 받아 들이는 내포지방 사람들의 심성도 한몫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불교 문화의 유입통로로 불교 문화 찬란하여 개심사, 수덕사 라는 큰 사찰이 있고  가야산은 충청도 내포 백제 불교의 중심이었습니다. 경상도 신라 경주의 남산 역할이었습니다.
그리고 조선시대 이곳은  사람도 많고 땅도 넓고 충청도 농경문화의 진수를 보여 주었습니다.  내륙 깊숙히 항구가 만들어져 있었습니다. 지금은 서해안 간척사업으로 포구기능이 사라지고 없습니다.

병인박해 전 철종 말기에 상부 내포 지역(충청 서북부) 산을 많이 끼고 있는 홍주,홍성지역 아산, 서산, 예산, 당진, 합덕, 솔뫼, 신리, 여사울 ,태안 을  다블뤼 주교의 관할구역, 하부 내포(하천 과 평야 지역 인 덕산 일대 )웅천, 보령 , 무창포, 대천, 서천, 부여 는 랑드르 신부, 충청 내륙 공주 사곡,부여,청양 =진밧은  리텔 신부, 충청 중부 내륙 과 공주인근 은 조안노 신부가 관할하여 활발한 신앙공동체가 만들어져 있었습니다.

그러나 1866년 병인박해로 다 무너지게 됩니다.
이곳 성지에서 가장 눈에 뛰는 분이 다블뤼주교입니다.
1866년 3월 3일 신리에서 체포됩니다, 그는  5대 한국천주교회 주교입니다.
1818년 프랑 북부도시 아미앵 출신이며 한국이름은 안돈이 집안 에서 딸 2명을 낳은 후 첫아들 이고 자녀들이 모두 프랑스 전통적인 가정 답게 모범적인 신앙 생활 과 덕행을 꽃 피운 집안이고 매우 존경 받는 유력한 집안이었습니다. 할아버지는 1823년 아미앵 시 의원 겸 시장이었습니다. 1834년 소신학교 졸업하였으며 신학생 중 제일 어리고  키도 제일 작았습니다.

1841년 서품 후 본당 보좌 신부 발령받고 20개월 사목 활동 하다가 마음 속에 품고 있던 전교 신부의 뜻을 아시아에서 펼치기 위하여 예수회에 입회를 신청 하였으나 아시아 선교 가 불 투명 하여 1843년 파리외방 전교회에 입회 하였습니다. 1844년 프랑스 북서부 항구 브레스트 항 에서 목적지 는 중국으로 출발하였습니다.

희망봉을 지나- 인도양-싱가포르-마카오 도착 하였습니다. 1845년 7/25일
조선 천주 교회 선교사로 인사발령이납니다. 당시 유럽 에서는 조선은 “순교자의 나라”로 알고있었습니다. 그래서 어머니께 편지를 보냅니다.
“ 이제 저는 여러 해 동안 신부 없이 불쌍히 지내는 나라 조선의 전교를 맡게 되었으니 큰행복이 옵니다, 이나라 에서는 열심한 교우가 많으며 장차 외교인들이 많이 귀화할 희망도 있습니다, 그러나 입국 하기가 매우 어렵 습니다.

아버지 어머니께서는 제가 그러한 곳으로 가게 되었다는 말을 들어 시고 혹 슬픔 마음이 드시거든 우리 하느님의 허락 없이 사람의 털끗  하나도 건드리지 못 할 것임을 깊이 생각 하시면 좋을 듯 합니다“


다음순례는 11.1~4일 제주 성지순례 3박4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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