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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순례후기

제목 골배마실,은이성지, 삼덕고개,미리내 도보성지 순례 / 2021.10.16
작성자 김창환 작성일 2021-10-27 13:52:44


+찬미예수님

10/16일 골배마실,은이성지, 삼덕고개,미리내 도보성지 순례입니다.
사당동에서 9시에 흰머리소녀,검은 머리소년 26명이 모였습니다.
흰머리소녀중에는 순례중 김대건신부에게 드릴 꽃다발 3개를 준비해온 분 도 계십니다.
오늘도 하루 김대건신부의 일생중 극적인 상황을 생각해봅니다.

그때 페레올  주교는 연락을 받아서 이제는 조선으로 들어가려고 다블뤼 신부님과 함께 오십니다.
 오셔서 보니 배가 엉망진창인 것을 알고 배를 고치라고 이야기합니다. 돛대가 부러져 돛대를 새로 갈고 삿대가 부러져 삿대를 고치려니 나무가 없습니다. 그래서 가마니를 가져와서 삿대 역할을 하게끔 합니다. 그 배가 바로 용수성지 마당 우측에 있는 배입니다.  길이 25자(7.5m), 너비 9자(2.7m), 깊이 7자(2.1m)인 형편없는 배입니다.

 그러고 있는데 페레올 주교가 와서 보고 그 폭풍을 만나 죽을 고비를 넘긴 그 배를 타고 다시 조선으로 간다니 이번에는 돛대도 삿대도 더 형편없이 만들어서 과연 배가 갈 수 있을지 기가 막힐 지경입니다. 그러나 안 고칠 수 없는 상황에 그것을 보고 주교님이 이 배 이름은 “라파엘호”라고 명칭을 만들어 줍니다.

그래서 ‘라파엘호’라고 정해집니다. 모르는 사람은 ‘라파엘호’라고 하면 거창한 배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이렇게 타고 온 배도 고치고 1845년 8월 17일 상해 금가항 성당에서  현석문, 최형( 모방신부의 복사, 최방제의 형 )등 11명이  참석하고 다블뤼신부, 페레올주교의 주례로 한국천주교회 61년 만에 사제가  탄생 됩니다. 바로 김대건 부제의 사제서품미사를 거행하였습니다. 그리고 8월 24일 상해 횡당성당에서 첫 미사를 봉헌하고, 1845년 8월 31일  상해를  출발합니다.  페레올주교는  조선에서 가져 온 배를 보고 두려워 합니다.

‘라파엘호’를 타고 오다가 또 폭풍을 만납니다.
폭풍을 만나서 이번에는 죽을 고비를  겪는데 먹을 것 입을 것 다 배 밖으로 던져 버리고 배는 풍파에 맞으니 우리나라 남해안으로 흐르는 해류에 바람이 불어서 제주도로 밀려오게 되었습니다.
 베가 스스로 움직일 수는 없었고 해류를 따라 용수 앞 바다 작은 무인도 차귀도에 1845년 9월 28일 도착합니다. 그러면 여기서 죽을 고생을 하고 죽음을 직면한 상태에서 육지에 처음 도착하였을 때 주교님, 신부님 그때는 김대건은 사제 서품을 받고 난 뒤였습니다. 그 땅에서 무엇을 했겠습니까? 우리도 그곳에 내리면 성호경부터 먼저 하지 않겠습니까?

 그분들은 신부와 주교입니다. 당연히 미사를 지내야지요. 외국인 신부와 김대건 신부가 한국에서 첫 미사를 드린 곳입니다. 차귀도를 예사로 보면 안 됩니다. 용수성지를 다녀왔다고 자랑하시지 말고 차귀도를 다녀오셔야 합니다. 거기에서 미사를 하고 들어왔는데 기가 막히는 일이 생깁니다. 하느님이 계시면 어떻게 우리나라에 복음을 전하는 외국인 신부들을 이렇게 고생을 시키시는지 이런 생각이 언뜻 듭니다. 잘 생각해 보십시오. 그때 만약 폭풍을 안 만나고 서해안 앞 바다로 바로 갔으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전부 죽었습니다.

 왜냐하면 그 1주일 전에 영국 군함이 아편 전쟁이 끝나고 나서 조선 서해안을 다녀갑니다. 그래서 조선 조정이 발칵 뒤집어집니다. 인천 앞 바다와 서해안에 비상령을 내려 해안에 외국 선박, 내국 선박 왕래하는 것을 철저히 검문검색을 하였습니다,
 만약에 김대건 신부가 라파엘호가 파손되지 않고 서해안으로 바로 들어왔으면 즉시 죽었습니다. 그래서 폭풍을 만나 제주 차귀도에 표착한 것은 하느님의 섭리입니다. 김대건 신부와 함께 동행한 이들을 죽이지 않기 위한 하느님의 섭리입니다.

 우리는 인생이 어렵다고 내 인생은 왜 이런가 하고 한숨을 짓고 괴로워합니다. 하느님이 살리려고 그렇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셔야 합니다. 그것을 이곳 용수성지에서 느껴야 합니다. 나에게 왜 이런 시련을 주시는지요? 아니다. 너를 살리려고 하는 것이다.

 김대건 신부는 그 폭풍을 만나지 않았으면 죽었습니다.  그리고 이곳 성지의 두 번째 특징은 제주도 전체 지역에서 배를 고칠 수 있는 곳이 이곳 용수뿐이라는 사실입니다. 이곳이 유일한 곳입니다. 다른 곳에서는 고칠 수가 없습니다. 고쳐 가지고 다시 서해안을 통해 들어간 곳이 1845년 10월 12일 밤 8시 현 강경성지 성당 자리입니다. 교우 구순오의 집에 한달 남짓 머룰며 고국에서 첫 사목활동을 시작하였습니다.  강경성지 성당은 이렇게 용수성지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강경성지 성당에서 두 번째 미사를 봉헌하기 전 이미 차귀도에서 우리나라 첫 미사가 봉헌되었습니다.

제주교구에서는 이것을 굉장히 소중하게 여깁니다. 그래서 176년 전  김대건신부 일행의 차귀도 표착을 생각하며 매년 교구장 주례 표착 재현 미사를 봉헌합니다.
여러분들 인생에 어떤 시련이 있어도 그 시련은 무엇 때문에 왔다고요? 여러분을 살리려고 온 겁니다. 이것을 못 느끼면 인생을 잘못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어떤 시련에도 감사해야 한다고 합니다. 나는 모르지만 더 큰 불행을 막기 위한 어떤 일이라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그것은 김대건 신부와 그 일행이 겪은 일입니다.


다음순례는 11월1-4일 제주 3박4일 추자도포함 30명 형제자매와 글라렛신부와 달려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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