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가기 메뉴
본문내용 바로가기
메인메뉴 바로가기
서브메뉴 바로가기
Home > 순례자센터 > 제주순례후기

제주순례후기

제목 2021년 1월1일~4일[3박4일]
작성자 오완수 작성일 2021-01-09 15:21:48


2021년 01월01일 ~ 01월04일(3박4일) '참 제주성지순례' 
 
+찬미예수님

1908년 한국 제주도가 원산지인 수령 265년 된  제주 “왕벚꽃나무”가 프랑스인 “에밀다케”신부에 의해 발견 된다, 일본에 있는 벚꽃나무는 제주산 “왕벚꽃나무”가  일본에 전해져 일본의 국화처럼 알려 진다. 다케신부의 한국 이름은 엄택기 1873년생 -1952년 영면  신부의 묘는 대구교구청 성직자 묘지에 모셔져 있다. 1898년 24살 조선에 첫 발 , 한국에서 보낸 시간은 55년이다, 태어나고 자란 프랑스보다 2배 더 한국에서 산다.

신부님은  식물을 사랑 하였다, 1902년 제주 서귀포 하논성당 주임신부로 발령받고  그리고 서흥동 홍로성당으로 다시 발령이 난다. 13년 간 홍로를 중심으로 교세 확장을 하며 제주교구의 초석을 놓는다. 제주 포교 후 목포성당으로 , 1922년 대구 성 유스티노 신학교 교수 로 1940년 은퇴, 1952,1,27일 영면 일본에서 사목중인 포리신부( 식물 채집가 )를 만나고 나서 그는 식물채집을 시작한다. 우리가 어린날 풀을 뜯어 책갈피에 끼워놓았던 여름방학 식물채집 숙제도 옛날 이야기였는데 그 보다도 훨씬 더 오래전 20세기 초에 이렇게 식물채집을 할 수 있었던 에밀타케신부의 자연에 대한 사랑과 열정은 대단하였다.

홍로본당에서 여러 식물을 채집, 표본을 만들고 미국하버드, 영국 왕립식물원 에든버러. 프랑스 파리 자연사 박물관, 일본 도쿄대 등에 보내어 제주식물을 전 세계에 알린다.
왕 벚꽃나무( 천년 기념물 제156호 )발견을 한다. 유럽에서 크리스마스 트리 로 사용하는 “구상나무” 도 1907년 파리외방전교회에서 함께 동문수학했던 포리 신부와(마르세이유항 에서 함께 출발해서 조선으로 일본아오모리 흩어저 선교할동) 한라산1,400미터에서 발견한다. 타케 신부는 왕 벚꽃나무(일본에서는,사쿠라) 를 일본 아오모리 포리 신부에게 선물로 주자, 포리신부는 타케 신부에게 1911년 온주밀감 14그루 를 보내준다, 과거에도 감귤 재배가 있지만 한양 조정에 진상 품으로 매년 생산하는 것 이라 일반 백성들은 관리들에게 바치는 밀감만 보면 치를 떨었다. 오히려 감귤 재배는 백성들을 괴롭히는 일이다, 임금 수랏상에 올려야 할 수량을 수탈 대상이던 감귤나무를 베어 버린다, 진상제도가 사라 지고도 농민들은 감귤 재배에 관심이 없었다.

그러나  온주밀감이 들어오고 나서 서흥동을 중심으로 이 일대애 감귤원이 조성된다. 해방 후에는 온주밀감으로 자식들을 대학을 보낼 수 가 있었다. 밀감나무를 대학나무라고 불리웠다. 에밀타케 신부가 이토록 식물채집에 몰두한 이유는 무엇인가?그것은 사목적 열정에서 나온 것이다.그 당시 제주도는 가난 하였다, 타케신부는 땅을 사서 지역 사람들에게 논 농사도 가르키고 식물 채집으로 받은 보상금으로 농민들을 위하여 사용하였고 사목적 이유와 지역 주민들을 살리기 위하여 식물을 채집 하였다, 제주도민들을 사랑하지 않았다면 이런 정열이 나올 수 가 없다. 신부님은 제주 온주밀감의 아버지이다.

이렇게 제주교구 초기 선교사들의 눈물나는 사목의역사가 있기에

현재의 제주교구가 만들어 질 수 있는 초석이 되었다
그 제주교구 역사의 현장을 볼수가 있다.
제주로 성지순례가면
가톨릭신자임 자랑스럽게 생각하며
순례 하면 됩니다,



로그인을 하셔야 작성이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