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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바오로 수도회

제목 김동주도마 수사의 글 [8월23일, 연중 제21주일]
작성자 오완수 작성일 2020-08-24 15:17:25


 
[오늘의 묵상] 예수님은 누구이신가? - 가해 연중 제21주일

마태오 복음 16장 13-20

안녕하세요. 성바오로수도회 김동주 도마 수사입니다. 주일 복음 묵상 시청자 여러분의 건강을 기원하며 가정에 평화를 빕니다. 연중 제21주일 마태오 복음입니다.

예수님께서 필리피 지방에서 제자들에게 묻습니다. ‘사람의 아들을 누구라고 생각하느냐?’ 제자들은 다양하게 대답합니다. ‘세례자 요한, 엘리야, 예레미야, 예언자!’ 그런데 예수님이 다시 묻습니다.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 제자 중 성격이 급한 시몬 베드로가 먼저 대답합니다. “스승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십니다.”라고 대답하자 예수님은 베드로를 칭찬하고 나아가 큰 권한을 주십니다. ‘하늘나라의 열쇠’를 맡기며 사랑하는 제자에 대한 큰 신뢰를 보여주십니다.

오늘 제게 와 닿은 말씀은 ‘사람의 아들이 누구냐’는 예수님 질문의 답인 ‘살아계신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에서 특히 ‘살아계신 하느님’입니다. 살아계신 하느님! 성경 주해서를 보면 ‘살아계신 하느님이란 하느님이 모든 생명의 근원이시다.’ 라고 고백을 담은 구약성경의 전형구입니다. 구약의 신명기 5장 26절에는 ‘육체를 가진 사람 가운데 살아계신 하느님께서 불 속에서 말씀하시는 것을 듣고도 우리처럼 산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그리고 시편 84편 3절에는 ‘살아계신 하느님을 향하여 제 마음과 제 몸이 환성을 지릅니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살아계신 하느님’은 여러분에게 어떤 의미일까요? 예수님은 어째서 사람들의 존경을 아직도 받고 계실까요? 예수님의 사후 2,000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사람들은 왜 예수님을 찾고 있을까요? 아마도 예수님께는 우리 보통 인간들에게 발견하기 힘든 위대함이 있는 것이 아닐까요? 사랑이라는 위대함! 예수님은 그 위대한 사랑으로 오늘날에도 살아계신 하느님을 증거하고 계신 것입니다. 우리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살아계신 하느님’을 보이는 사람을 통해 증명하고 계십니다. 사실 ‘살아계신 하느님’을 만날 방법은 바로 살아있는, 생명력이 있는, 숨을 쉬는 사람을 통해서입니다. 위대하고 진정한 사랑을 보여준 한 이야기를 들려드리겠습니다. 위대하고 사랑에 가득 찬 의사 선생님의 ‘사랑의 처방전’입니다.

영국 한 시골 병원에 가난한 부인이 찾아와 애원하였다. “의사 선생님, 남편이 죽어가고 있어요, 살려주세요.” 의사는 하던 일을 멈추고 왕진 가방을 챙겨 그녀의 집으로 달려갔다. 그때 부인은 의사의 눈치를 보며 “선생님, 죄송합니다만 지금 가진 돈이 한 푼도 없습니다, 죄송해요.”라고 했다. 의사는 “그게 무슨 대수입니까, 죽어가는 사람부터 먼저 살려야지요.” 의사와 부인은 누추하고 낡은 집에 도착하였다. 쓰러져 누워있는 남자를 진찰하고 말했다. “부인, 심각한 병은 아니니 안심하셔요.” “정말 감사합니다. 선생님.” 병원으로 돌아온 의사는 부인에게 작은 상자 하나를 보여주며 이 상자를 반드시 집에 가서 열어보라고 하였다. “이 안에 적힌 대로, 이 처방전 대로하면 남편의 병은 금방 나을 것입니다.” 부인은 집에 가서 조심스레 상자를 열었더니 그 안에 한 뭉치의 지폐가 메모와 함께 들어 있었다. 처방전: ‘남편 분은 극도의 영양실조입니다. 이 돈으로 남편이 가장 드시고 싶어 하는 음식을 맘껏 사드리세요.’ 부인은 감격하여 눈물을 흘리며 오랫동안 의사의 처방전을 읽고 또 읽었다. 부인에게 친절을 베푼 이 의사는 평생 사랑의 인술을 펼친 영국의 유명한 의사 올리버 골드 스미스이다. 위대함은 어디에서 오는가? 어떤 사람이 위대한가?

살아가면서 위대한 사랑을 어떻게 실천하는지 구체적으로 알려주는 예화였습니다. 올리버 골드 스미스는 일생을 변함없이 성실하게 보여주어 위대한 의사로 칭송받고 있습니다.

‘살아계신 하느님’을 산다는 것은 하느님을 증명하는 것이며, 말이 아닌 행동이고 일회성이 아닌 성실하게 지속성을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살아계신 하느님’을 산다는 것은 나의 사랑을 주는 것입니다. 아낌없이 조건 없이 다 주는 것입니다. 사랑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 선생님은 살아계신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십니다.’
여러분도 ‘살아계신 하느님’을 살 수가 있습니다. 아멘. 평화를 빕니다.


- 성바오로 수도회 김동주도마 수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