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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바오로 수도회

제목 김동주도마 수사의 글 ①
작성자 오완수 작성일 2020-04-07 15:06:30


2020년 4월 4일(토)

요즈음 코로나19 신종 바이러스로 정말 힘에 겨운 나날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예수님의 말씀과 음식의 잔치인 미사성제를 매일 직접 참여하지 못하고 수동적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현실에 안타까움을 느끼며 말씀 묵상과 같은 영성에 목마른 신자들에게 구체적, 실제적 도움을 드릴 궁리를 하다가 복음 말씀 묵상 동영상을 제작하기로 하였습니다. 소박하게 만들어본 이 영상이 예수님의 기쁜 소식에 목말라하는 이들에게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복음에서는 예수님을 믿는 유대인들과 예수님을 죽이려고 하는 사람들이 나옵니다. 예수님을 죽이려고 하는 사람들 역시 유대인들임에도 이렇게 두 부류로 극명하게 나뉩니다.
수도 공동체나 세상이라는 커다랗든 작든 모든 공동체에서도 두 부류로 극단적으로 나뉘는 경우가 있는 것 같습니다. 선을 쫓는 이들과 선의 결핍인 악을 쫓는 이들로 갈라집니다. 다 아시겠지만, 보편적으로 선을 지향하고 사는 사람들은 좋은 열매들을 생산해 냅니다. 어떤 좋은 열매인가요? 밝음-환한 얼굴-, 온유함, 관대함, 용서, 사랑, 활기, 따듯함이라는 마음의 열매들입니다. 반대로 악을 쫓는 이들, 그러니까 악에 물들어 사는 이들은 어둠(침울하고 냉소적인 표정), 침울, 미움, 분열, 시기, 불평, 불만, 냉소, 엄격함이 과합니다. 지나치게 과한 것이지요.

어느 공동체이든지 가정, 수도, 사회, 직장 등에서 사람을 크게 두 가지 성향으로 구분하면 좀 더 성숙한 사람과 많이 미성숙한 사람으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성숙한 사람 앞에 좀 더, 라는 말을 굳이 넣은 것은 이 세상에 완전하게 성숙한 사람이 없기 때문입니다. 또 많이 미성숙한 사람의 ‘많이’ 라는 말을 넣은 것은 ‘많이’가 ‘적게’로 변할 수 있다는 기대를 갖고 싶기 때문입니다. 

제가 사는 수도원에서 실제 일어나는 일을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성숙한 사람, 성숙한 수도자는 수도회 관구 총회나 기타 회의에서 내가 추천하고 찬성하는 어떤 안건을 다른 수사님이 반대해도 그러려니 하고 인정하고(정상 감정: 조금은 불편하고 화도 납니다) 수용하는 사람입니다. 이렇게 수용하는 수사님의 얼굴은 대체로 편안해 보입니다. 나아가 활기나 생기도 가득합니다. 당연히 이런 분 주위엔 사람이 많습니다. 편안하니까 대인관계가 원만하지요.
하지만 성숙하지 못한 사람은 내가 찬성하는 일에 누군가 반대를 하면 끝까지 뒤끝 작렬하여 일 년 내내 아니 평생을 한탄과 불만을 쏟아 내며 살아갑니다. 감정이 상했기 때문입니다. 화와 분노, 질투가 정리·정돈돼야 하는데 그렇지 않고 이성과 감정이 뒤죽박죽 섞여 있는 상태입니다. 대부분 이런 분들의 표정은 심통이 나 있거나 불만투성이의 찡그린, 즉, 편안하지 않은 얼굴입니다. 대부분, 그렇습니다.
우리들은 어떤 얼굴을 선호하나요? 화난 얼굴, 불평이 많은 사람을 찾습니까? 대부분 거의 모든 사람은 자기와 마음이 통하는 사람을 찾는데 그런 이들은 많은 경우 온화하고 그냥 잘 들어주고 편안한 사람을 찾아갑니다. 이야기하는 사람(화자)을 판단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들어주기만 하여도 말하는 이들은 감동합니다.
자 그럼, 어떻게 있는 그대로 들어주고 온화한 얼굴과 마음 편한 사람이 될 수 있나요? 양과 이리의 예화를 들려드릴게요. 이 이야기는 다를레이 자농이라는 성바오로수도회 브라질 수사님이 쓰고 같은 수도회 김동주 도마 수사가 번역한 ‘참 소중한 이야기’에 등장하는 예화입니다.    
예화: 내 마음 안의 애완동물은?
학교에서 친구들과 싸우고 돌아와 화가 잔뜩 난 소년이 할아버지 품에 안겨 서럽게 울었다. 할아버지는 손자를 달래주며 “나도 한때는 다른 사람들 때문에 상처받고 화가 난 채 살아왔단다. 시간이 지나면서 한 가지를 알게 되었다. 화가 나서 살면 살수록 손해를 보는 것은 나 자신이라는 것.
사람의 마음속에는 두 가지 동물이 있단다. 양과 이리란다. 양은 선하고 다른 동물들과 잘 지내지, 누구를 공격하지도 않고, 이리는 다른 약한 동물들을 괴롭히고 잡아먹기도 하지. 늘 화가 나 있고 이빨을 드러내고 공격을 하곤 해.
놀라지 마, 이 두 가지 동물들이 우리 사람 마음 안에 다 있단다. 이 둘이 함께 산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지. 이 두 동물은 누가 힘이 센지 힘겨루기를 하는 것과 같단다”.
소년이 물었다. “그럼 둘 중 누가 이겨요? 양이에요? 이리예요?”
미소를 머금고 할아버지가 손자에게 대답하였다. “그야 물론 먹이를 많이 주는 쪽이지. 선행을 해서 양의 배를 채우면 양이 이기고, 나쁜 행동을 하여 이리의 살을 찌운다면 이리가 이기겠지.”

결론: 선한 양이 자라게 하기 위해서는 이리에게 먹이를 주지 말고 착한 행동과 좋은 감정을 유지해야 합니다. 즉 양에게 먹이를 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슬픔이나 화를 잘 다스리고 선행을 쌓으며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유지해야 합니다.

어떻게 평온하고 따듯한 감정을 유지한 채 사람들과 잘 지내느냐고 물었지요? 그것은 이리에게 먹이를 주지 말고 양에게 먹이를 주는 것입니다. 양이라는 감정에게 좋은 영양가 있는 먹이를 주세요. 사랑하는 마음, 용서하는 마음, 측은하게 여기는 마음 등의 먹이를. 아름답고 영양가 높은 먹이에요.

이렇게 될 때,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을 따르는 사람들이 되는 것입니다. 신자 여러분, 힘을 내시고 용기를 내시어 잘 지내시기를 영상을 통해 바랍니다. 코로라 사태 힘겹지만 의연하게 용기를 내 잘 이겨내 봐요.


- 성바오로 수도회 김동주도마 수사 -